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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병 속의 남자

문턱 너머: 시험대에 오른 것은 기계가 아니라 우리다

2026년 10월 7분 소요 Ferhat Gedik

인공지능과 로봇이 미래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두려움은 사실 기계가 아니라, 역사 내내 이어져 온 인간의 탐욕과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심에서 나옵니다. 지능과 노동의 비용이 0에 가까워지는 지금, 세계는 끝없는 공동 번영의 시대로 들어서거나, 디지털 봉건주의의 손아귀에서 스스로의 원시성에 희생될 것입니다. 값싼 노동의 시대가 닫히는 이 역사적 갈림길에서 튀르키예의 진짜 과제는 기계와 경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교육과 생산을 하청 생산에서 높은 부가가치로 바꾸어 이 거대한 시험을 이겨 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로봇이 세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병 속에서 바라보면 나는 다른 것이 보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힘을 손에 쥐었지만 여전히 예전의 식욕으로 살아가는 인간. 튀르키예 역시 값싼 노동의 장부를 덮고 부가가치의 장부를 열어야 하는 처지로 이 시험에 들어섭니다.

우리는 엉뚱한 적에게 화를 내고 있다

요즘은 어느 식탁에 앉든, 어떤 대화에 끼든 이야기는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옵니다. 인공지능, 로봇, ‘우리를 끝장낼까?’ 나는 대개 말없이 듣고만 있으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해 온 일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역사 내내 권력을 쥔 자는 약자를 짓밟고, 자원을 약탈하고, 자기 이익에 맞게 규칙을 썼습니다. 이제 우리보다 똑똑한 무언가가 나타나 우리에게 똑같이 할까 봐 겁에 질려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전력입니다. 칩에는 탐욕도, 식욕도, 이웃을 앞지르려는 욕심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금리 결정과 주가 지수와 무역 적자를 보며 세계 경제를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단층이 움직이고 있고, 그것은 이런 지표로는 읽을 수 없습니다. 기계가 세상을 차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은 있되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데 로봇은 필요 없습니다.

진짜 위험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첫 번째 위험은 누가 무엇을 가지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공장 하나에 백 명이 일했지만, 이제는 열 명과 많은 기계가 있습니다. 그 이익은 누구에게 갈까요? 생산 자본을 쥔 소수에게 갑니다. 나머지 수십억 명은 생계 수단을 잃을 위험에 놓입니다.

이것을 실업률 숫자로만 읽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월급은 월말에 통장에 들어오는 돈 이상의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이고, 동네에서 ‘나는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지갑만이 아니라 정체성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두 번째 위험은 지구의 인내심입니다. AI는 놀라운 효율을 선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효율로 덜 소비할까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떤 기술도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못했고, 이번에도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남은 수자원과 희토류와 숲은 더 빨리 소진될 것입니다. 도구가 날카로울수록 피해도 더 빨리 옵니다.

세 번째는 내가 보기에 가장 덜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디지털 봉건주의. 데이터의 흐름, 칩 공급망, 핵심 에너지망을 쥔 이들이 새 시대의 영주가 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접근을 끊겠다’는 위협이 국제법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무역 전쟁, 기술 수출 금지, 블록화를 보세요. 모두 이 싸움의 1막입니다. 세계가 쪼개질수록 협력은 어려워지고, 지정학적 긴장은 실제 충돌의 문턱까지 다다릅니다.

풍요는 나눌 때에만 풍요다

이제 동전의 다른 면을 봅시다. 그쪽도 적어도 이만큼 흥미롭습니다. 지능과 육체노동의 비용이 0에 가까워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건강, 주거, 깨끗한 에너지, 식량 같은 기본적 필요가 투기의 손을 벗어나 모두의 권리가 될 수 있습니다. AI로 개발한 신소재, 녹색 에너지, 핵융합 덕분에 자연에서 원자재를 캐낼 필요가 줄고, 폐기물 없는 순환 생산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수백 년 동안 인간을 톱니바퀴로 만들어 온 반복 업무가 기계에게 넘어가면 인간이 처음으로 자기 잠재력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는 점입니다. 상상력과 철학과 예술과 과학,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즐거움을 위한 시간이 생길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로봇이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침내 인간이 되는 것으로 봅니다. 다만 이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이 문은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소유와 분배의 질서를 바꾸지 않는 사회에서 풍요란 누군가가 더 부유해진다는 뜻일 뿐입니다.

튀르키예: 값싼 노동의 시대가 닫힐 때

이제 우리 마당으로 와 봅시다. 우리는 수년 동안 스스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젊은 인구가 있고, 노동력이 싸고, 수출하면 성장한다. 솔직히 한동안은 통했습니다. 섬유, 기성복, 자동차 부품, 조립 위주의 생산이 이 이야기의 등뼈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거대 브랜드들은 생산을 로봇화하고, 공장을 노동력이 싼 곳에서 소비자 곁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쥔 가장 큰 패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값싼 노동으로 경쟁하는 경제에게 진짜 위협은 기계의 등장이 아니라, 그 경쟁 우위가 하룻밤 사이에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에너지와 중간재는 해외에 기대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첨단 기술에서는 사는 쪽입니다. 오랜 고물가는 구매력을 갉아먹었고, 장보기는 이제 계산이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최저임금 논쟁은 해마다 같은 긴장 속에 돌아오고, 소득 분배에서 노동의 몫은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많은 청년이 학교에도 일터에도 없습니다. 잘 교육받은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해외를 바라보거나 떠나기를 꿈꿉니다. 이런 그림에서 자동화의 물결이 거세게 덮칠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패가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인구는 제대로 길러 낸다면 짐이 아니라 역사적 기회입니다. 방위 산업, 특히 무인 시스템에서 보이는 공학 역량은 이 나라가 기술의 소비자로만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소프트웨어와 게임과 스타트업 세계에서도 재능 있는 세대가 자라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한다’는 아나톨리아의 생산 본능은 오랜 세월 시험을 거친 유연함입니다. 과제는 이 성공 사례들을 몇몇 산업의 예외에서 경제 전체의 원리로 바꾸는 것입니다.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값싼 노동에서 아이디어와 디자인과 브랜드로 옮겨 가는 것뿐입니다. 환율 조정도, 금리 결정 한 번도 이것을 풀어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첫걸음이 무엇을 측정하는지를 바꾸는 것이라고 봅니다. 국내총생산은 숲을 베어 팔아도 늘고, 병이 늘어 약이 많이 팔려도 늡니다. 한 나라의 성공을 이렇게 거친 잣대로 읽는 것은 자원을 고갈시키는 일을 성공으로 치는 것입니다. 생태적 균형, 사회적 복지, 사람들의 정신적 성장까지 헤아리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합니다.

둘째, AI 모델은 인류 전체가 함께 쌓아 온 것으로 학습했습니다. 책, 논문, 이미지, 코드. 수 세기의 노동입니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가치가 몇몇 기업의 금고에 갇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나 로봇세 같은 생각은 쉽게 ‘유토피아’라며 밀려납니다. 그렇다면 자동화가 널리 퍼졌을 때 수백만 명에게 달리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이 논의를 미루는 것은 푸는 것이 아니라, 더 혹독한 맞닥뜨림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일 뿐입니다.

셋째, 우리와 가장 가까운 문제인 교육입니다. 암기에 기대고, 시험이 끝나면 모두 잊고, 졸업장을 취업 보증서로 여기는 체계로는 이 경주에 뛰어들 수 없습니다. 내일의 자본은 질문하는 능력, 하나의 문제를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능력,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능력, 자기 양심으로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알고리즘이 보여 주는 대로 생각하는 사회는 가장 빛나는 기술을 가졌다 해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업을 지키기 전에 먼저 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결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나는 병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약간의 거리는 사람에게 차분함과 정직함을 함께 주기 때문입니다. 그 거리에서 보면 이것이 보입니다. 기계가 의식을 얻어 우리의 주인이 되는 일은 생각만큼 가까운 가능성이 아닙니다. 더 가까운 것은 우리가 양심과 덕을 잃고 그 오래되고 익숙한 욕심의 노예가 되는 일입니다. 새로운 세계 질서는 실리콘에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가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설 수 있느냐에 쓰일 것입니다.

“선택은 한 번도 알고리즘의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 손에 있다.”

우리는 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공동의 번영과 회복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스스로 만든 도구의 완벽함 속에서 우리 자신의 원시성에 희생될 것입니다. 선택은 한 번도 알고리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손에 있습니다. 뚜껑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우리입니다.

이 글은 Ekonomi Dünya 매거진 2026년 10월호의 칼럼 Kavanozdaki Adam(병 속의 남자)에 처음 실렸습니다.